서울의 밤거리를 가로등 불빛이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이진우는 담배를 물고 어두운 골목을 응시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진우야, 나 민호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피곤해 보였다.
"좀 이상한 사건이 있어서... 네 도움이 필요해."
이진우는 한숨을 쉬었다. 강민호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함께 경찰이 되었지만 이진우는 결국 사직하고 사설 탐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어제 저녁에 술집 마담이 살해됐어. 수법이 사형 집행된 연쇄 살인범 김영민과 비슷해."

이진우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공식 수사 결과로는 설명이 안 돼. 비공식적으로 네가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어?"
이진우는 잠시 침묵했다.
"알았어. 내일 아침에 만나서 얘기하자."

다음날, 두 사람은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민호는 피곤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사건의 세부사항을 설명했다.
"김영민의 과거를 조사해봤는데, 1년 전까지 서울역 노숙자였대."
강민호가 말했다.
"그리고... 이상한 얘기지만, 사형 집행 전에 김영민이 '유령에 빙의당했다'고 주장했대."
이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령 빙의? 그게 무슨 소리야?"
강민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뭔가 이상해."
이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서울역 주변을 좀 뒤져볼게. 김영민의 과거에 대해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며칠 동안 이진우는 노숙자들을 탐문했고, 마침내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김영민이 갑자기 돈을 벌어 노숙 생활을 청산했대."
강민호는 이 정보를 듣고 내부적으로 김영민의 재산 증식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영민이 우연히 교통사고 목격자가 된 거 같아. 그 이후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현금으로 전달된 거 같아."

이진우가 말했다.
두 사람은 김영민이 목격했던 교통사고 위치를 찾아냈고, 그곳에서 발생한 두 건의 의문의 교통사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사고의 피해 여성이 병원으로 이송 중 사라졌다는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고, 두 번째 사고의 CCTV 영상에서는 사고 직전 피해자를 미는 듯한
흐릿한 형체를 포착했다.
수사가 진전되면서, 두 사고의 가해자가 동일 인물이며 유명 변호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사실은 가해자인 변호사가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민호야, 이것 좀 봐."
이진우가 컴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변호사 살해 사건당시 주변 CCTV 영상이야."

강민호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영상 속에서 김영민으로 보이는 남자가 변호사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와 몸짓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이상하지 않아? 마치 다른 사람이 김영민의 몸을 조종하는 것 같아."
강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가 이상해.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지?"
이진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에는... 첫 번째 사고 피해자의 영혼이 김영민에게 빙의해서 변호사를 살해한 거야."
"뭐라고?"
강민호가 놀라 소리쳤다.

"생각해봐. 김영민이 주장한 '유령 빙의' 이야기, 그리고 이 어색한 움직임들. 모두 연결돼."
강민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이진우의 말이 전혀 근거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 술집 마담을 죽인 범인도?"
이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도 그 영혼이 또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한 거겠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초자연적 현상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날 밤, 이진우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변호사 심문 과정이 담긴 녹취록을 검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진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민호야, 이거 이상해."
"뭐가?"
이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민호를 바라보았다.
"이 녹취록... 변호사의 말투가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들어봐."
이진우가 녹음을 재생했다. 음성은 분명 변호사의 것이었지만, 말투가 어딘가 어색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변호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여기 봐. 변호사가 첫 번째 사고의 피해자를 고의로 치어 생매장했다고 고백하고 있어. 하지만 이 목소리... 뭔가 이상해. 첫번째 사고도 고의가 아니었고"

강민호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진우는 김영민의 진술 기록을 재검토하며 그가 주장했던
'유령 빙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김영민이 유령에 빙의당했다고 했잖아. 우리가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지."
"그래 형량을 줄이려면 뭐라도 이야기 해야 했을꺼라 생각했는데..."
강민호가 중얼거렸다.

"첫 번째 사고 피해자의 원혼이 김영민에게 빙의해 변호사를 죽인거 아닐까? 그리고 김영민이 사형 당한 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을 빌려 범행을 이어가고 있는 거야. 심지어 변호사의 목소리로 증언까지 하고 있다고."
강민호는 이진우의 초자연적 추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증거들 앞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지?"
강민호가 물었다.
이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첫 번째 사고 피해자의 유해를 찾아야 해. 죽은 변호사가 숨긴 피해자를.."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강민호가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봐야지."
이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건이 재발 하는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진우는 사설 탐정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변호사의 행적을 추적했고, 강민호는 경찰 내부에서 비공식적인 특별 수사팀을 꾸렸다.
운 좋게도 그들은 변호사가 사용하던 핸드폰을 발견했다. 강민호는 즉시 디지털 포렌식 팀에 의뢰해 핸드폰을 복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들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진우야, 여기 봐."
강민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구글 타임라인 데이터야. 변호사의 동선이 그대로 나와 있어."
이진우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야. 뺑소니 사고 시기와 겹치는 동선이 여기 있어. 이 동선에서 실종자를 찾을수 있겠지 내가 보기에 이 동선이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는데 이곳이 아닐까?"
그들은 즉시 해당 지역으로 향했다. 수색 끝에 그들은 마침내 첫 번째 피해자의 유해를 묻은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민호는 경찰 감식반을 호출하여 유해를 수숩할수 있었다.


다음 날, 그들은 유가족과 함께 장례식을 거행했다. 화장이 끝난 후, 이진우는 유가족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송합니다."
이진우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고인께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진우와 강민호는 한강 둔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지고 있었고, 강 너머로 붉은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걸로 정말 끝일까?"
강민호가 물었다.
이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우리가 해준 것이 이 피해자의 원한을 달래준 걸까? 이걸로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강물에 비친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한강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빛이 강물 위에서 일렁이며 그들의 뒷모습을 붉게 물들였다. 긴 그림자가 둔치 위로 길게 늘어졌고, 두 사람의 굳건한 실루엣이 강변에 새겨졌다.
침묵 속에서 붉은 노을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몇 주 후, 이진우는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이진우입니다."
"어 진우야 잘 지내니? 나 민호야."
강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한테 전해줄 소식이 있어."
이진우는 펜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야?"
"마담 살해 사건 용의자를 잡았어. 믿기 힘들겠지만, 김영민의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이야."
이진우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그게 다가 아니야. 그 교도관이 그 후로도 몇 건의 추가 범죄를 저질렀대. 하지만 체포됐을 때 그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이진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서랍에서 달력을 꺼내 교통사고 피해자의 유해를 수습한 날짜와 추가 범행 날짜를 비교해보았다.
"이건... 민호야, 아직 끝난 게 아닌 것 같아."
"무슨 뜻이야?"
"김영민의 악령... 아니, 그를 빙의한 원한 맺힌 영혼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어. 우리가 피해자의 유해를 수습한 후에도 범행이 계속됐다는 거야."
강민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리가 해준 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거야?"
"아니,"
이진우가 말했다.
"우리는 한 피해자의 영혼은 달랬을지 모르지만, 김영민의 악령은 아직 남아있는 거야.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전화를 끊은 후, 이진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아직 모든것이 해결된게 아니라는 사실을....

